일타큰스님의 6년 고행
스님의 집안이 출가한 내력은 억지로 된 게 아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인연을 따라 이어진 것이다.
일타스님께서 입산하신 것은 1942년 열네 살 되던 해이다. 통도사에 있는 보광중학교를 다니면서 대강사이신 윤고경(尹古鏡)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계율을 배우고 이듬해 1943년 수계(受械)를 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열여덟 살이었어. 그해 은사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사십구일이 지난 후 통도사에서 송광사까지 칠일을 걸어서 효봉(曉輝)스님을 찾아 뵙고 삼일암(三日魔)선원에서 수선(修輝)을 했지. 효봉스님께서 해인사의 ‘가야총림’ 조실로 가신 뒤, 다시 통도사로 돌아가 승가대학에 입학하여 1949년에 졸업을 했는데 그 이듬해 사변이 터졌어.
승가대학올 졸업하고 나니 학문을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일더구만. 대학에 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났어.
1954년 어느 봄날, 「능엄경」을 읽다가 갑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었어. 대학에 가겠다는 마음은 결국 사람 노릇 하겠다는 미련 때문이란 것을 알았지. 그 순간 사람노릇 할 생각일량 집어치우고 도 닦는 중노릇만 하기로 결심을 굳혔지.”
이런 일이 있은 후 스님께서는 긴 수행과정 속에서 인간적인 갈등과 속세에 대한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해 연비를 감행하게 된다.
“이럴까 저럴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던 바로 그 해 ’54년에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 갔어. 「능엄경」에 ‘삼매(三妹) 를 닦고자 하여 여래의 형상 앞에서 소신(燒身) 연비(然臂) 연지(然뺀旨)를 한다면 이 사람은 옛 빚을 일시에 갚아 끝내는 사람이라 하리라’는 부분을 접하고는 기도를 하고 연비를 실행했어. 이로써 온갖 망상을 깨끗이 씻고 수행에 전력하는 대전기(大轉機)가 된 것이야.”
연비. 스스로 불에 제 살을 태우고 뼈를 태움으로써 적멸의 상태에 들어가고 거기서 비로서 자유로워지는 장엄한 구도의식(求道儀式)이다.
일타스님의 오른손 네 손가락은 모두 이 연비의식에 의해 없어지고 뭉퉁그래진 형상만 남아 처절했던 구도의 순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 후 스님께서는 태백산 도솔임에 들어가 혼자서 만 5년을 누더기 한 벌로 수행에 진력, 한치의 회의도 가져보지 않을 만큼 청정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스님께서는 당시의 열락(脫樂)을 이렇게 회상하신다.
“55년에 태백산에 들어가 60년까지 외적인 인연을 일체 단절하고 산 속에서만 살았으니 나의 확실한 심중은 그 만 5년동안의 정진 속에서 싹트고 열매 맺었다고 할 수 있지.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 진실로 내게로 다가왔어. 내 생애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시간은 스물 일곱에서 서른 두세 살까지의 도솔암 시절이었다고 믿어. 참으로 법열(法悅)로 가득찬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
도솔암에서 내려오신 후 스님께서는 한때 불교정회운동의 차원에서 비상종회가 구성 되었을때 15인으로 구성된 비상종회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 일 외에는 별다른 직(職)을 맡아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자그마한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셨다.“어느 해인가 나를 해인사 주지를 시킨다기에 밤새 도망을 친 일이 있어. 공부하러고 산 속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주지를 하라고 해서 달아날 ‘주(走)’자에 갈 ‘지(之)’자의 ‘주지(走之)’를 방에 써 놓고 달아난 적이 있어.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을 전부로 알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해.”
그래서 스님께서는 일등 중노릇은 무상발심(無常發心)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스님 행적 가운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여행이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유럽, 북미, 남미, 최근에는 중국 등 48개국을 여행하시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시기도 했다.
스님께서 하시는 여행담은 너무나 재미있었지만 지면관계상 다 설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동안 스님 스스로 일생을 뒤돌아볼 때 율사로서 법사로서 선사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지만 늘 은사스님이셨던 고경스님의 교훈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천하의 불전(佛典)을 다 알고 팔만대장경을 다 의리(意理)로 해석한다고 해도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를 당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임종때 말씀하셨는데 이제 남은 생은 율사, 법사로서의 삶보다는 선수행에 전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스님께 한 세상 살아가는 데 후회가 따르지 않는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여쭈었더니,
“생명은 본래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먼지만 닦아내면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본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길잡이가 될 것이야.
사람은 세계 속에 놓인 주체자이지만 결국은 모든 문제가 자기와 상황과의 관계,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확대되고 열매 맺기 때문에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해. 선인(善因) 선과(善果)로 엮어지는 생애, 그것이 곧 진실로 자아를 찾는 구도자적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이 지니는 성격에 따라 단순한 삶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 다양한 모습이 되고자하는 사람, 모두가 각기 개성 있는 모습을 지니지만 분명한 것은 철저하고 확실한 자아를 찾아 성숙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문제라고 생각해.” 라고 일러 주신다.
스님께서는 크고 작은 파도가 모두 고요해지면 바다 위에 우주의 만 가지 모습이 그대로 그림자로 찍히듯이 일상에서 평정한 마음을 가져야 세상을 관조(廳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스님과의 대담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겨울밤 하늘에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 별빛만이 가득했다. 제각기 자신의 삶을 비추고 있는 별을 보면서 내 별은 어떤 빛으로 떠 있는지 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인 제 107호 이철순......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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