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과 삼국유사 그리고 어머니
| 일광 | 조회수 1,864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그리고 어머니

1, 삼국유사 소장자
경상북도 군위에 인각사(麟角寺) 절이 있다. 이 절은 우리 미륵사에서 2014년 2월 20일 정초 방생을 가서 법당에 참배하고 학소대 아래 방생을 하였던 절이다. 인각사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이고 일연스님이 주석했던 아름다운 절이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삼국유사의 진본은 현재 우리나라에 4곳(?)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는데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대 규장각, 연세대 박물관, 개인소장, 그리고 사찰은 범어사가 유일하다. 범어사 삼국유사는 그동안 보물이었는데 이번에 첫 범어사 국보(20,6,30)로 승격 되었다. 일연스님은 청도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였고 마지막 갈무리를 군위 인각사에서 마치고 열반에 드신 절이다.
미당 서정주선생은 대한민국 출판 된 서적 가운데 책 한권을 추천한다면 <삼국유사>라고 극찬을 하였다. 삼국유사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사와 종교와 문화가 생활이 담겨 있는 위대한 책이다. 대한민국의 제 1번 서적이며. 우리 국민이라면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 삼국유사이다.

2. 일연스님은 효상좌
일연스님은 효상좌이다. 스님 나이 79세 때 96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18살 차이) 일연스님이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인각사(麟角寺), 천년고찰에 깃든 효심(孝心)이, 그리움이, 불심(佛心)이 우리에게 아련히 들려오는 곳이다.
오랜 옛날부터 인각사에는 일연과 일연스님의 어머니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인각사와 일연스님의 부도탑 그리고 어머니 산소는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데, 인각사 석등에 불을 켜면 그 불빛이 부도와 어머니 묘소를 향해 일제히 뻗쳤다’는 이야기, 또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일연의 부도와 맞은 편 어머니의 산소 사이에 도깨비불이 왔다 갔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고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면 그 빛이 일연의 부도에 반사되어 어머니가 계시는 건너편 산으로 광채가 뻗쳐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3. 무관스님과 차담
내가 처음에 인각사를 참배한 것은 1994년 쯤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나의 도반 무관스님이 은해사에서 교무로 살았고 주지 규필스님이 무관스님에게 하양에 있는 은해사 말사 환성사 주지 소임에 임명한 것이다. 그때 환성사를 갔더니 옛날 모습 그대로 고색창연한 고찰이었다. 공양을 하고 차를 마시면서, 무관스님은 나에게 환성사가 좋을까요 군위 인각사가 좋을까요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 두 개의 사찰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절에 주지소임을 살라고 은해사의 통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아직 인각사를 참배 한 적은 없지만 인각사는 일연스님이 주석한 곳이며 삼국유사로 유명한 절입니다. 일단 스님이 한번 가 보시고 결정 하십시오 전국적인 지명도는 인각사가 환성사보다는 높은 곳이라 생각 합니다> 무관스님은 결국 인각사 주지로 갔다. 1994년의 인각사는 참으로 썰렁하였다. 겨울이라 바람은 불고 저녁이 되니 적막강산이었다. 평지가람인데 절을 감싸는 담장은 없고 허허 벌판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가련한 사찰로 보였다. 전각 4 ~ 5개 정도 있었다. 무관스님과 나느 저녁을 준비해서 먹었다. 인근에 어떤 <기찬이 엄마>라는 보살이 잠시 와서 밑반찬을 해 주고 갔다. 스님과 나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둘이서 차담을 하였다. 동지섣달 깊은 밤에 새가 울었다. 무관스님은 저 새우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라 하였다. 어떻게 우느냐고 하길래 그냥 새우는 소리를 융내를 내었다. 그랬더니 자기의 목소리로 밖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를 융내내고 있었다. <호~~~~~레비 ㅈ>  <호~~~~~레비 ㅈ>  <호~~~~~레비 ㅈ>
이렇게 소리를 낸다고 했다. 내가 왜 그렇게 낸다고 생각 하느냐고 물으니 인각사에 총각스님들이 있다고 환영 한다고 새들이 번갈아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새가 있다고 하면서 들어보라 한다. 나는 귀를 세워서 들어보니 작은 새들이 지지배배 하는 것 같았다. 무관스님은 저 작은 새들의 소리를 잘 들어오면 <ㅅㅊ> <ㅅㅊ> <ㅅㅊ>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들리는가 물었더니 암놈 숙놈이 같이 다니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였다. 저녁에 기찬이 보살이 귀한 상추를 가지고 와서 잔뜩 먹었더니 이제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스님은 인각사 화장실이 유명하니 한 무더기하면 얼른 엉덩이를 하늘로 번쩍 들어야 한다면서 만약 늦으면 아래 물로 낭패를 본다고 했다. 나도 그날 낭패를 조금 봤다. 마침 후원에 따뜻한 물이 있어서 몸도 씻고 하의도 세탁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4. 일연스님의 열반
큰스님은 83세를 사시고 드디어 열반에 든다  
지필묵을 가져다 놓고 제자들에게 붓을 달라고하여 한지에 적었다.
즐겁던 한시절 자취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으랴
한끼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세상사 꿈인줄 내인제 알았노라  
일연큰스님이 입적할 때 뭇사람들과 작별한 뒤 눈을 감고 기(氣)가 끊어진지 이미 오래였다. 지금 선원사(禪源寺)에 있는 정공(頂公)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목소리로 “부도탑을 세울 곳을 여쭈어보지 못했으니 후회막급이요”하고 말하니, 뭇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일연 스님이 적정(寂定)상태에서 고요히 깨어나서 뭇사람들을 둘러보고 “여기서 동남쪽으로 4~5리쯤(지금 거리로 1.6~2km로 실제 거리와 비슷-직선거리 1.2km정도) 가면 수풀이 우거진 산록이 기복을 이루면서 오래된 무덤 같은 곳이 있는데, 그곳이 정말 명당이니 거기에 부도를 안치토록 하라”하시고는 다시 종전처럼 눈을 감았는데, 흔들어 보았더니 이미 입적한 상태였다.라고 일연비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인각사-일연부도탑 터-일연 어머니 묘” 이 세곳이 정확하게 정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97년) 6월 홍순홍 전 군위군수가 일연스님 어머님 묘 앞에 ‘낭랑군부인이씨지묘’가 적힌 상석을 가져다 놓고 무너진 봉분과 주변을 정비했다고 한다.

* 위 글은 퍼온글과 나의 글을 편집하여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