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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야기
서울의 중앙청 뒤쪽, 청와대 올라가는 길목에 보면 효자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젊은 농부가 그 아내와 함께 들에 일하러 나가게 되었다. 워낙 일손이 부족했기에 아내는 젖먹이 외아들을 거동이 편치 않은 시아버지께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아기를 보다가 평소 좋아하던 약주를 마시고는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점심 때가 지나 젖먹일 시간임이 생각난 며느리는 배고파 보챌 어린 것을 생각하여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아기 울음소리로 요란할 줄 알았던 집안이 너무도 조용한 것이다. 방문을 여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슬픈 광경을 보게 된다. 시아버지 밑에 아이가 깔려 죽어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자기 실수로 손자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곤하게 자고 있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께서 손자가 죽은 것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해서 몰래 아이를 안고 남편에게 왔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죽은 아기를 아무도 몰래 산에 묻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이 놈아 나도 불효자지만 너는 더 큰 불효자식이구나, 어쩌자고 네가 죽어 할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는단 말이냐? 이 불효막심한 놈아” 하면서 아이의 뺨을 세게 때리며 통곡을 했다.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기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질식해 죽었던 아이가 살아난 것이다. 부부의 지극한 효성을 보고 하늘이 감동을 했던 것이다. 그 후 이 일을 알게 된 임금님이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핵가족화 되면서 부모나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적어지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이러한 효자동의 유래는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펌글
두번째 효녀 심청 이야기
옛날 옛날 어떤 마을에 심봉사가 살았어요. 심봉사는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는데, 청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어요.심청의 어머니는 청이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어요. 심봉사는 청이를 안고 다니며 젖을 얻어먹였어요.
심청은 무럭무럭 자라 열 살이 넘었어요. 심청은 남의 집 일을 하여 아버지를 모셨어요.
어느 날 심청이 이웃 마을에 일을 하러 갔어요.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심봉사는 마중을 나갔어요. 심봉사는 더듬거리며 다리를 건너다 그만 개천에 빠졌어요.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달려와서 건져 주었어요. \"절에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부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리에 그만 스님과 약속을 해 버렸어요. 그리고는 걱정이 되어 한숨만 내쉬었어요.그 때 심청이 공양미를 구해보겠다고 했어요. 뱃사람들이 바다에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하러 마을에 왔어요.
\"저를 제물로 사세요.\"
뱃사람들은 공양미 삼백 석과 심봉사가 먹을 쌀과 돈을 주고 심청을 데려갔어요. 심청이 탄 배가 인당수에 이르렀어요.갑자기 물결이 거세지며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왔어요. \'우리 아버지 눈을 뜨게 해 주세요.\' 심청은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어요.심청은 바닷속 용궁 앞에 쓰러졌어요. 바닷속 선녀들이 심청을 용왕님께 데려갔어요.\"너의 효심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심청을 연꽃에 넣어 바다 위에 뛰워 놓아라.\"
뱃사람들이 무사히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당수 물결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하고 연꽃을 건져 임금님께 바쳤어요.연꽃잎이 벌어지며 아름다운 처녀가 나왔어요. \"저는 용왕님께서 보내신 심청이옵니다.\" 임금님은 너무 기뻤어요.그래서 결혼식을 올려 심청을 왕비로 맞았지요. 마음씨 고운 심청은 훌륭한 왕비가 되었어요.하지만 심청은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어요. 심청의 슬픔을 달래 주기 위해 임금님은 장님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어요.심봉사는 청이 대신 자신을 돌봐 주던 뺑덕어멈과 함께 대궐로 향했어요.
그런데 뺑덕어멈이 그만 노잣돈을 모두 들고 도망가 버렸어요.
심봉사는 물어 물어 대궐에 왔어요. 넘어지고 엎어져서 옷은 누더기에 꼭 거지꼴이었지요.
하지만 심청은 한눈에 아버지를 알아봤어요.\"아버지! 제가 청이에요.\" \"뭐? 내 딸 청이라고?\" 심봉사는 하도 반갑고 놀라와 눈이 번쩍 뜨였어요.심봉사가 눈을 뜨자 다른 장님들도 모두 눈을 떴어요. 심봉사는 대궐에서 심청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
세번째 효자 이야기
어느 마을에 효자로 이름이 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가난하지만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때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에게 못쓸 짓을 시키기도 하는 불효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으로 처음 보는 사람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효자의 이야기는 소문을 타고 고을원님에게 전달되었다. 원님은 어떠한 청년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지 궁금하여 직접 효자가 사는 마을로 가 그 집을 찾았다.
원님은 몰래 숨어서 청년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했다.
저녁 무렵이 다가오자 청년이 나무를 잔뜩해 가지고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에 들어서면서 아들은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저 나무 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하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백발 어머니가 아들을 반가이 맞아 준다. 아들은 나무 짐을 마당에 내려놓자마자 어머니는 아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었다.
그런데도 아들은 거절은 않고 즐겁게 노모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발을 내 맡기고 있었다. 발을 다 씻어준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 밥상을 차려 아들 앞에 내와 아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로 맛있는 음식을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담장 넘어 에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원님은 언짢은 모습을 하고는 동헌으로 돌아가 청년을 불러들이게 했다. 영문도 모르는 청년이 포졸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뒤 따라 갔다.
동헌으로 붙잡혀 온 아들을 보고 원님은 \"당신이 그 유명한 효자요?\"하고 묻자 청년은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 저는 어머니에게 잘해 드린다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청년에 대답에 원님은 더욱 화가 나서 지난번 미행 때 본 것을 청년에게 말했더니 청년은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어머니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에게도 즐거워 어머니가 하시고자 하는 대로 둡니다. 그렇게 해야 어머니가 편안해 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원님께 \'자신이 잘못하여 아들이 불효자로 오해 받게 했다.\'며 자신과 아들의 행동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원님은 그때에서야 진정한 효성의 참 뜻을 알게 되어 어머니가 즐겁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려 주고 어머니의 뜻을 받드는 것이 진정한 효자라며 큰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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